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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한 삶은 그런 것이지요.

#9. 글, 집 만능주의

 

장갑에 바퀴벌레가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내 누이는 자지러지고
덩달아 벙찐 장갑, 입만 뻐끔
헐레벌떡 뛰쳐나온 어머니께서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벌레를 잡아 불에 태우셨다

날이 추워지는 밤, 서먹한 가을이 밤바람에 슬그머니
으름장을 놓는 날이면 집이 없는 것들이 면면을 드러낸다.
더는 영위할 것이 없어 속절없이 쫓겨난 이들과 더러는
애당초 얼굴 없이 웃는 밤, 길어지는 그림자들도 있다.

밀리고 밀려 저 높은 옥상까지, 떠밀리다 못해
드넓은 사거리 전봇대 위 목 맨 붉은 물감칠해진 마네킹까지,
죄다 그림자 진 얼굴이다.

살기 위해, 살아야 했으므로
나는 그늘져도 딸린 식솔만큼은 노란 전구의 온기 속에 머물기를 바랐기에
아래로 떨어지고 위로 길어지는 투쟁.

적적한 새벽 홀로 나와 서먹한 전봇대의 어깨에
시뻘건 실직의 밤을 걸던 그도,
뜨거운 불에 타버린 방랑의 밤
좁고 안락한 틈 포근한 온기 속
바퀴벌레 한 마리도
잠시 누워 눈을 붙일
집이 필요했던 게지
그저, 집이 필요했던 게지

집 만능주의, 이 솔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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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로몬님의 Instagram 사진: “* * * * ⠀ 장갑에 바퀴벌레가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내 누이는 자지러

좋아요 106개, 댓글 6개 - Instagram의 이솔로몬(@lslm_93)님: "* * * * ⠀ 장갑에 바퀴벌레가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내 누이는 자지러지고 덩달아 벙찐 장갑, 입만 뻐끔 헐레벌떡 뛰쳐나온 어머니께서는 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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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수필을 주로 올리는

Instagram에 있는

'집 만능주의'라는 글입니다.

 

글에 대해 조금 설명을 드립니다.

대구 영대병원역 사거리 전봇대에

빨간 물감이 칠해진 인형이

가장 꼭대기에 걸려 

흉물처럼 몇 시간 걸려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놀라

다급하게신고를 해댔고,

이내 인형은 정리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투쟁이 무엇을 위한 투쟁이었는지,

무엇을 말하고자 한 행동인지알 수 없습니다.

그저 제가 알 수 있었던 건먹고 사는 게 참 힘들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몇 해 전 제 누이는 요리 장갑을 끼다가

놀라 소리치며 장갑을 던졌습니다.

그 안에서 바퀴벌레가 나왔다는 말인데,

어머니는 의연하게 그것을 잡아불에 태우셨습니다.

더럽고 불결한 존재, 

삶에 더는 쓸모가 없어진,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들도먹고 살곳이 필요했나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시인의 본분은

환경운동가나 사회복지사가 되어

그들을 위로하는 방법도 좋지만,

우리네 터전이 우리의 것이 아니었을 때도

시와 글로 그것을 지키고

위로해온 것처럼, 펜과 그 촉으로 

잊히는, 기억되지 않는 것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한 명의 시인으로써

본분을 다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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