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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개해드리려구요.

#2.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글의 앞머리에서 아버지의 세발자전거를 잠깐 이야기했었는데요.

그때가 1953년이나 1954년 즈음입니다.

당시 며칠씩 생으로 굶던 처지의 어린 아버지가

갖기에는 값비싼 물건입니다.

그 자전거는 사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를

대신한 물건이었습니다.

며칠씩 울기만 하는 아들이 불쌍했는지

할아버지가 선물해준 것이지요.

분명 자전거도 좋았겠지만 '엄마'라는 것이

무엇으로 대신 할 수 있는 것인가요.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


 

죽음은 누구에게나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준다.

시간에 모든 것을 맡겨본다는 것을 제외하고

큰 시련 앞에 감당할 수 있는 슬픔이라는 것은 없다.

마냥 그렇게 한없이 살아가야 한다.  표정없이.

 

박준 시인의 삶은 다른 어떠한 것들을 넘어서

삶과 죽음의 경계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삶과 죽음을 연결시키는 것들끊어질 듯한 호흡,

혼미해지다 정신을 차리는 시간, 간극

 

 

박준 시인은 작가이기 이전에 시인이다. 

시인은 삶의 이면에 존재하는 것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시라는 소재를 통해

그려내는 사람이다.

 

모두가 알고있지만 모른 채하는 것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것들잊히는 것과

잊지 말아야 하는 것들

가감없이 말하는 이들이다.

죽음도 삶도그의 글에서는 멀지도

그렇다고가깝지도 않은 듯하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일상을 적은 산문집이 아니다.

맞이하는 모든 순간에 존재하는

일종의 감각을 본인만의 시선에서

다시금 재구성해 만들어 내는

그것은 그림 같은 예술에 가깝다.

'두얼굴'이라는 글이다.

 

 

'두얼굴'은 단순히 그와 그녀의 얼굴을 말하지 않는다.

일몰이 기대된다는 말과 일출이 보고싶다는 말

같이 갔던 섬과 홀로 다시 오게 된 섬

홀로 떠난 여정, 홀로 찾은 일출과 일몰

닮아있는 두 얼굴

말갛던 그 얼굴과 발개지던 나의 얼굴

닮아있는 첫인사와 끝인사의 안녕까지.

그는 단순히 글쟁이가 아니다. 

그는 예술가이다.

 

그의 글은 나에게 오랜 위로를 주었다.

그것으로 내게 글을 쓰게 만들었다.

나는 그의 글을 몇 번이고 곱씹으며 글을 썼다.

예술가는 예술에 영감을 받는다.

나는 일종의 예술을 하는 사람이다.

글을 쓰는 사람을 넘어서 예술을 하는 사람이다.

그의 예술이 내게도 큰 영감이 됐다.

잊고 지내던 여러 형태의 그림자같던 그리움을

지점토로 만든 찰흙인형처럼 만들어버린 것이다.

무언가를 막연히 그리워하는 내게

그는 가만히 떠올려보면 모두 이유가 있을 거라는 식의

말을 하는 듯했다. 그의 말은 그랬다.

 

'희고 마른 빛'이다.

 

 

 글을 쓰는 나는 막연히 그리워 하는 일이 자주 있다.

그의 그리움과도 모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움이 극에 달하면 사람은 아주 쉽게 무너진다.

어딘가에 열정을 가질 수도 없고,

밤 늦게 잠시 불어오는 바람에도 스러지곤 한다.

그는 어쩌면 내가 말하는 것보다 더 오래

무엇인가를 그리워했을 지도 모른다.

희고 마른 빛이었다.

그 말이 얼마나 오래 나를 무너뜨린지 모른다.

 

 

세상에는 내가 맞이하고자 해서 맞이하는 것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원한다고 오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이가 드는 일도 어쩌면 그것에 일부일 것이다.

'나이가 드는 일'의 일부다.

"제가 잘은 모르겠지만 한창 힘을 때겠어요. 

적어도 저는 그랬거든요. 사랑이든 진로든

경제적 문제든 어느 한가지쯤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지요.

아니면 모든 것이 마음처럼 되지 않거나,

그런데 나이를 한참 먹다가 생각한 것인데

원래 삶은 마음처럼 되는 것이 아니겠더라고요.

다만 점점 내 마음에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나도 자연의 일부다. 그것을 벗어나고자 

때로는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해보고자 하지만

이내 실패하고 부족한 나의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이곤 한다.

나이가 드는 일도 스스로 나아가는 일도

모두 나의 마음대로 가는 듯하나

어느것 하나 내 뜻처럼 가지 않는다. 

다만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데에,

그러한 한계를 순응하는 데에 익숙해지고

그 순응 속에서 감사를 배워갈 뿐이다.

 

그도 나도 그들도 우리 모두 사람이다.

누군가를 오래 그리워할 수 있고,

사람을 사랑하기도 하며

때로는 울다 지쳐 잠들기도 하는 그런.

나는 책을 통해 느낀 것처럼

때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느꼈던 감정과 깨달음처럼

이러한 모든 것들이 우리네 삶 속에서

우리를 굳혀 나간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면 됐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같이 울면 조금 덜 창피하고 서로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 생각에 동의하는 긴 묵음을 남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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