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을 소개해드리려구요.

#3. 난 혼자지만, 혼밥이 좋아


여름에도 뜨거운 심장이며

겨울에도 뜨거운 심장인 당신을,

 

흙먼지 탈탈 털어내며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당신을

 

나사를 조이며

툴툴 거리는 당신을, 조이며

 

그 이마를 짚어주고 싶다

 

북서풍의 계절

 

모락모락 김은 나고

대파처럼 듬성듬성 푸른 청춘 떠있는, 당신을

 

소금을 치며

후추를 치며, 당신을

 

밤늦도록

모락모락 뜨거운, 당신을

 

한 그릇 다 비우고 싶다

 


난 혼자지만, 혼밥이 좋아

정훈교


 

시를 쓰는 내게도 시는 어렵다.

언제부터일까 시가 우리에게 어려워진 게

하지만 예술이 어렵다고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쓰거나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순수문학, 예술은 예술이다.

시를 쓰는 나는 그 어려움의 간극을

조금씩 메꾸며 마냥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여전히 어렵다. 시도 그렇다.

당신을 읽는 일도 어렵다.

다가가려하면 자꾸만 멀어지지만,

잡아도 잡히지 않고 떼려야 수 없는 그림자같은

 

시도, 정훈교 시인에게 있어 그도

 

시집은 읽어도 다시 읽어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 말이 있다.

단숨에 읽을 수는 없지만

분명 존재하는 장면들이 있다.

 

'당신을 읽다' 이다.

대구에는 동인시영아파트가 있다.

높게 들어선 아파트와 건물들과는 다르게

신천대로 한 편에 우두커니 늙어가는아파트가 있다.

 

그곳에는, 그 곁에는 한 노파가 있었다.

같은 시간이면 일정한 산책을 나서는

놀이터 한 편에 앉아 눈사람처럼

녹아가는 노파가 있었다.

소식이었다.

발 앞에 '툭'하고 떨어진 

부고였다.

 

그 노파의 마지막이 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일은 모두에게 각자 다른 방향으로 영향을 가진다.

하지만,

자꾸 동공이 쌓이는 의자와익숙한 잔상은 지울 수 없다.

슬픔보다는 무거움이다.

 

무게를 측정할 수 있는 슬픔은 없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아픔도 없다.

 

'동인시영아파트'

 

그의 시를 보고 나는 어머니를 그렸다. 

사춘기를 힘겹게 넘기는 어머니의 모습을,

일찍이 집을 떠나 시집을 가버린

그들의 젊은 나날들은 모두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문득 듣다가 고요해지는 문이 있다' 이다.

시는 언제나 열려있다.

읽는 독자들의 시선에서 열려있는 해석을 준다.

"이 시의 정답은 이것입니다." 라는 말은틀린 말이다.

의도는 있지만 의미는 각자에게 모두각기 다르게 미친다.

그것이 시다.

 

하지만 나는 멀고도 먼 그 간극을

조금은 쉽게 그려주고 싶다.

어떤 시인도 자발적으로 나서서는도무지 하지 않는 일이지만

나는 하고 싶다.

시의 아름다움을 들려주고 싶다.

어려운 게 아니다. 아름다운 것이다.

 

'문'에 대한 의미가 다양하다. 

나가지만 들어올 수 도 있고 

새로운 것들을 맞이하게 하는 문.

 

일찍이 든 시집살이가 되기도 하지만

술에 자주 취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못난 아버지를 맞이하는 딸일 수도 있다. 

내게 저 시는 그런 것들을 떠올리기에 좋았다.

나를 오랜 세월 그 전으로 데려가는 듯했다.

어머니가 아주 그리워지는 밤이다.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밤이다.

 

항상 있다가 어느샌가 없어지는 것들이 있다.

귀를 파는 면봉이라던지, 수시로 사라지는 리모콘이나

가끔은 주머니에 두고도 찾게 되는 휴대전화 같은 것들

하지만 이따금, 그것들이 살아 숨쉴 때면

단순히 정신이 없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더더욱 그러하였다.

'마지막이라는 말에는 석류 알처럼 붉은 슬픔이 잠들어 있다' 이다.

정훈교 시인은 살아있는 글을 쓴다.

누구도 가지 않으려는 길을 구태여 가는 사람이다.

가지 말라면 더 가고싶어만지는

그런 병을 가진 것만 같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며 시를 쓰는 시인이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에서

가치를 따라 사는 그는

알이 없는 석류 같은 사람이다.

나는 늘 그러한 이들의 하루가허전하고 쓸쓸함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가능만 하다면 

모락모락 뜨겁게 피어오르는 시의 아름다움을

모두에게 한 그릇씩 나누어주고 싶다.

 

훌륭한 시집이다. 

시는 천천히 보아야 보인다.

어렵지만 어려움을 만들기 위해 쓴 것들은 아니다.

문학이 죽은 나라는 어느 면에서도 문화적 우위를 점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시가 일몰처럼 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