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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한 삶은 그런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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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 손톱 조각 한없이 사랑을 주어본 사람은 안다 무언가를 주고도 더 줄 수 없어, 줄 것이 없어 그저 미안한 끊임없이 사랑을 쏟은 사람은 안다 사랑하는 이에게, 사람에게 진정 사랑을 쏟은 자만이. ⠀ 더 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다는 말 이것밖에 줄 것이 없어 미안하다는 말 ⠀ 내심 마음에 걸려 건네는 응어리진 한없이 부어도 도무지 차지 않는 사랑을 쏟아본 사람은 안다 응어리진 채 풀리지 않은 미안함을 가슴에 묻고 살다 그제야 아주 조금 숨 돌릴 틈에 자그마한, 조막만 한 마음 건네며 미량의 죄책감을 털듯 뱉어내는 말이라는 것을 그들은 안다 ⠀ 나 그제야, 잘려나간 손톱만큼 어머니 마음 헤아려본다 ⠀ 손톱 조각/ 이 솔로몬 https://www.instagram.com/p/B6IrFyNldO7/ ⠀
#10. 글, 어수룩한 고백 "저는 25살이고요. 그냥 뭐 놀고 있습니다." ⠀ 예비군 훈련을 받던 중 주어진 자기소개 시간, 한 청년의 용감한 고백. 무의식중에 일어나는 생각들과 어수선한 정적 ⠀ 25살은 꿈을 가지고 목숨을 거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 30살은 번듯한 직장을 가져야 하나 35살은 만나는 사람이 있어 결혼해야 하나 40살이 되면 자식이 있어야 하나 ⠀ 이 모든 것을 다 갖추면 멋지고 일반적인가 하나라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시대에 뒤처지는 삶을 사는 사람일까 기준을 정한 사람은 누구이며 과연 그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가 행복이 종이를 재단하는 것처럼 깔끔하게 재단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기준은 누가 만들어 낸 것인가 직장이 없는 사람은 한숨 소리를 꿈이 없는 사람들은 혀를 끌어 차는 소리를 듣는 것으로 그렇게 쉽게 정..
#9. 글, 집 만능주의 장갑에 바퀴벌레가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내 누이는 자지러지고 덩달아 벙찐 장갑, 입만 뻐끔 헐레벌떡 뛰쳐나온 어머니께서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벌레를 잡아 불에 태우셨다 ⠀ 날이 추워지는 밤, 서먹한 가을이 밤바람에 슬그머니 으름장을 놓는 날이면 집이 없는 것들이 면면을 드러낸다. 더는 영위할 것이 없어 속절없이 쫓겨난 이들과 더러는 애당초 얼굴 없이 웃는 밤, 길어지는 그림자들도 있다. ⠀ 밀리고 밀려 저 높은 옥상까지, 떠밀리다 못해 드넓은 사거리 전봇대 위 목 맨 붉은 물감칠해진 마네킹까지, 죄다 그림자 진 얼굴이다. ⠀ 살기 위해, 살아야 했으므로 나는 그늘져도 딸린 식솔만큼은 노란 전구의 온기 속에 머물기를 바랐기에 아래로 떨어지고 위로 길어지는 투쟁. ⠀ 적적한 새벽 홀로 나와 서먹한 전봇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