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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택한 삶은 그런 것이지요.

#16. 글, 호흡이 멈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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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아주 이른 시간에 불꺼진 시골 모퉁이처럼

한 사람이 갔다

마치 전등에 불을 끄듯 간단명료하게

그를 한참동안 생각했었다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그때 그이가 내게 퍽 다정했나 서먹했나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있었나 같이 웃으며 걸었던 적이 있었나

다정하게 그를 불렀던 기억이 있나

한 개인이

아니

하나의 어떠한 것이 사라지기 전

나는 그것에 대하여 숙고한 적이 있는가

돌아가는 것 앞에 명분을 찾다가

발걸음을 돌린다

한번도 반추한 적이 없는 이는 옛 것에 명복을 빌 자격이 없다

단지 죽는 순간까지 돌아본 그 날을 기억하며 살 뿐

호흡이 멎은 어두운 밤 굳어버린 공기와 뻣뻣한 비보

해가 진 후 번지는 낙조처럼 가장 아름다웠던 그 이름을

18.08.06

 


 

비보를 듣습니다.

한 사람의 소식입니다.

더는

들을 수 없는 이름입니다.

 

죽음은 개인을 자유롭게 하지만

남겨진 이들에게족쇄 같은 마음을 줍니다.

 

그때의 내가

그 순간에 내가

그를 어떻게 여겼는지

그가 내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오랜 시간숙고하게 만듭니다.

 

어제는 누군가의 비보가

제 지인에게 떨어졌습니다. 

헐떡이다 멎을 듯 멎지 않는,

소리를 듣다가오랜 시간 끌어안았습니다.

 

울음에 쫓기듯 급히 들어마시는

숨의 소리가 울음보다 더 슬픈 소리라던

박준 님의 '울음과 숨'이 떠오르던 밤이었습니다.

 

오늘은 글을 쓰다

잔상처럼 들썩이는 어깨가 자꾸만 떠올라

부고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는 어김없이

블로그에 글을 쓰려는데

오래전 떠나보낸 친구와

그때 제가 홀로 적어두었던

추모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항상

그 때에 맞는 이유를 가집니다.

 

무언가 오래도록 생각나는 날은 아마

그것을 기억해야 하는이유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오늘은

오래 전 떠나보낸 그를

기억하게 되는 날입니다.

 

다시,

발 앞에 던져진 신문처럼

비참한 부고를 받은

제 지인이 떠오르는 날입니다.

 

슬픔에 대한 온전한 위로는

말없이 지켜봐주는 것이라는 생각을오래 했었습니다.

 

어떤 위로도 닿지 않는 슬픔에는

말을 아껴야 합니다.

 

오늘만큼은

이미 떠난 사람과 

누군가를 떠나보낸 사람을

오래도록 생각해볼 수 있는날이기를 바랍니다.

 

억수같이 비내리던 하루가 저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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